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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신영철 대법관의 언행때문에 이른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더군요. 대충 언론들의 보도를 살펴보면 춧불집회와 관련된 몇몇 민감한 사건들에 대한 판결에 특정 판사를 연속 지정하고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면담 등을 통해 판결에 영향을 미치려했다는게 이번 파동의 원인이 된 모양입니다. 절대적으로 외부적인 영향 없이 판사의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한다는 사법부의 존립근거를 훼손했다는게 문제가 되는 모양인데 사실 저는 대법관님의 종횡무진한 움직임 보다는 맨처음 문제시 되었던 판사의 배정문제가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여러 사건들을 한 판사에게 연속으로 배당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이 더이상 법원을 신뢰할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을 들게 한 것이죠.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법원 근처에도 갈 일이 없었던 평이한 삶을 살았던 저인지라 법원 내부의 규정이 어떠하고 사건 배당의 원칙이 어떻하고 하는 그쪽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무지하지 짝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무지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도 법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가지 기본적인 상식이자 믿음은 검찰이나 변호사야 자기 입맛에 맛게, 때에 따라 말을 바꾸서나 형량을 요리저리 바꿀 수는 있어도 법원에서는 법전이라는 명시된 기준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양자 사이에서 합의를 도출시킨다는 것이었죠. 그런 믿는 구석이 있으니 서로간에는 아무리따져도 결론이 안나오는 것들을 돈들여가며 골치아픈 절차 다 이행하면서도 문제거리들을 법원에 들고 가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공정성의 화신같았던 법원에서 누가 판사가 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번 판사배정 문제덕에 알게 된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몇몇 판사들이 윗선에 이러한 배당문제에 문제제기를 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판결은 공정하게 나온다고 해도 한명의 판사에게 그동안의 원칙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판사배정이 이루어진다면 그 재판에 대한 공정성이 의심받게 되고 법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제기는 얼핏보면 매우 타당하고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쭉 있어왔던 규칙이 가뜩이나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만 적용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외부의 지적을 받게 될 것이고 이때문에 공정하게 이루어진 판결이라 해도 불신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이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거듭되면 될 수록 그 원칙이 무너지게 된 원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판사 개개인의 양심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라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뭐 벌써부터 좌파 법관들 때문에 그동안의 법질서가 문란해졌다는 적반하장의 타박이 한나라당 높으신 어른들 입에서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판사 각각의 양심이 다른데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나요?


두번째는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춧불집회와 같은 민감한 사안일 수록 판사의 성향에 따라 정말로 판결이 갈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더더욱 심각한 문제인데 고려해야하는 고려사항도 많고 증언도 엇갈리고 사회적인 파장도 심각한 이런 문제에 있어서 아무래도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인 고려사항들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한 명이 단독으로 이에 대한 사건을 맡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무작위로 담당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른바 보수적인 판사에게 재판을 받아 유죄로 판결된 사람과 진보적인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 되나요? 물론 항소라는 또 다시 판결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지만 그때에도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닌데 또다시 판사의 성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나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요? 오락가락하는 판단의 기준이 결국은 판사라는 의심이 광범위하게 퍼진다면 이 역시도 사법부에 대한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제 짧은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 이유들 말고 다른 더 중요한 이유들도 훨씬 더 복잡하게 얽켜 있겠지요. 하지만 어떤 이유가 원인이 되었건 이미 손상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해결되지않는 문제를 법앞에 판단받으려 했건만 그 결과가 컴퓨터 무작위 배정의 결과에 따라 갈리는 것이라면 누가 속시원하게 판결에 승복하고 법을 존중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판사분들이 정해진 법률에 기계적인 판단을 할 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법관의 양심과 성향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는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되었든 그 문제를 오직 법률에 의거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이게 적용하고 결론 내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판사 개인의 성향이 좌가 되었든 우가 되었든 간에 부자이건 가난하건 출신 지역이 어디이건 간에 누가 어떤 재판의 담당이 되어도 동일하고 납득할 만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법치의 출발점 아니겠냐는 말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마지막 기댈 곳으로 법원을 선택했지만 결국에는 컴퓨터의 무작위 배정을 떨리는 맘으로 기다리는 것이나, 주름진 삶에 부질없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래도 소박한 희망으로 매주 로또를 사러 가는 것이 지금 상황에도 무엇이 다른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천박하고 어이없는 비교가 가능해지는 상황이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사랑하는 법치 국가의 모습인지도 잘 모르겠구요. 이래저래 점점 더 유치해지고 조잡해지는 세상입니다....



Posted by 들까마귀